교활하고 고약한 2월을 지나 3월은 홀린듯이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바쁜 달이다. 땅이 풀려 새싹들이 올라오고 눈길이 머무는 곳곳에 봉오리와 새순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봄맞이 스프링 클리닝을 할 타이밍 때문이기도 하다. 열대와 아열대 온실 앞 퍼걸라에 힘없이 늘어진 야자수 잎을 걷어내고 암석원의 잡초와 말라 비틀어진 여러해살이 풀들의 잔재를 잘라내니 몸은 고되지만 이내 올라올 풀들에게 길을 내어주는 일을 했다고 그래서 보람찬 시간이었다고 뿌듯해 하며 긴 숨을 내 쉰다.
난대(순화)온실의 온도를 점검하는 것은 중요한 일과다. 가끔 온실 안으로 들어온 새소리를 들으며 호스로 물을 주면 물을 흠뻑 머금은 흙에서 싱그러운 냄새가 퍼져 나오고 초록은 더 짙어진다. 흔히들 물주기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광량이 물의 사용량을 결정하고 이는 물을 어느 정도 줘야할 지까지 이어지니 흙의 상태를 관찰하고 어떤 식물은 잎에 닿지 않게 어떤 식물은 꽃에 닿지 않게 신경을 쓰다보면 물주기는 식물과 교감하는 행위라는 말을 실감한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저 물 주고 잡초 뽑고 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리고 파종한 식물의 분갈이를 하다 손톱 사이에 낀 흙을 보면 딕스터에서 맨손으로 흙을 만지던 기억이 떠올라 아련해 지기도 하고 육체노동 뒤에 오는 창조의 목마름에 여기저기 공모전 웹사이트를 뒤적거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다 퇴장하고 자연만이 존재하는 3월 아보리텀의 밤, 새벽, 이른 아침에는 여전히 살을 에는 추위가 가시지 않겠지만 고라니들이 뛰어다닐 것이고 눈에 담고 싶은 검은 밤하늘을 수놓는 무수한 별들이 무리를 지을 것이며 3월을 보여주려는 식물들이 인치바이인치(Inch by inch) 햇살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
자신의 모든 영양분을 차곡차곡 채워 놓은 구근에서 크로커스(crocus)가 흙 위로 배꼼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풍년화 (Hamamelis japonica Siebold & Zucc.)
(왼쪽부터) 히어리(Corylopsis coreana), 깽깽이풀 (Jeffersonia dubia) 들바람꽃(Anemone amurensis)
깽깽이풀 (4월 12월)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달’을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무릇 토양에 보탬이 되는냐 아니냐로 나뉜다. 정원가란 세상과 거리를 둔 온화한 성품과 시적 감수성을 지닌 존재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세계에 보다 깊이 발을 담그면서 진정한 정원가란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정원가는 집요하게 땅을 파내어 흙 속에 무엇이 깃들어 있는지를 게으른 사람들의 눈앞에 척 내보이는 존재다. 그네들은 땅에 파묻혀 살아가며 퇴비 더미 위에 자신의 공적비를 세워 올린다”
흙을 더 기름지게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3월임이 분명하고 아보리텀의 4월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궁금해 지기도 하는 3월 31일. 딕스터의 산더미 같은 퇴비 파일에 나와 동료 정원사들이 차곡차곡 쌓았던 정원 잔재물들과 티백과 바나나 껍질들이 더 생각나는 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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