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수목원에는 눈에 띄게 많은 포타그라퍼들이 몰려 오고 있다. 마치 그라스하퍼처럼. 가장 축복받은 4월을 놓칠세라 여기저기 우루루 몰려다니며 찰라의 순간을 영원히 포착하고 싶어서. 물론 나도 그 중 한 명임을 부인하지 않겠다.
The unbearable lightness of April silhouette & The invisible sturdiness of the winter being
3월에 이어 신성한 노동은 계속 이어진다. 열대사무실, 난대순화온실, 연구동, 카페테리아를 오가며 등과 어깨와 다리가 너덜너덜 해지니 먹고 살기 위한 꿈틀거림이 이보다 더 절실한 적이 있었던 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피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삶의 민낯을 이토록 생생하게 직면하면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보는 것이 영국 Great Dixter Gardens 에서의 노동 이후 오랜만 이기에 그러니 더 끌어 안아보라고 말한다.
단단히 영글었지만 한없이 연약한 싹눈, 새순, 봉오리, 싹이 움트는 어린 가지들은 자연의 가장 위대한 신비를 보여준다. 가을과 겨울 브라운 씨송이의 아름다움에서 이제는 싹눈과 새순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순간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난대순화온실 창을 열기 위해 창가 쪽으로 난 화단에 한발짝 한발짝 발을 내디딜 때면 흙 속에 숨어 있는 오이풀, 터리톱풀, 마타리의 새싹을 의도치 않게 뭉개게 될까봐 더 조심한다. 아무 곳에나 발을 척 들여놓는 거 같지만, 실은 손바닥만 한 공간에 사뿐히 발을 딛고 모든 것을 피하면서도 어디든 닿으려면 위의 발레리나처럼 완벽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TLC, Tender Loving Care!
분꽃나무 Viburnum carlesii hemsl.
당단풍나무 Acer pseudosieboldianum (Pax) Kom.
비비추 '크로사 리갈' Hosta 'Krossa Regal'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달’을 보면,
'정원가는 이름에 몹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플라톤식으로 설명하자면, 이름이 없는 꽃은 형이상학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꽃이다. 거기 있되 진정한 실재성은 결여되어 있다. 이름이 없는 식물은 잡초요, 라틴어 학명이 있는 식물은 어떤 식으로든 존엄성을 인정받는다.'
이 글을 읽고 잘 외워지지 않는 라틴어 학명에 내가 왜 그렇게 집착하고 있는지 그리고 라틴어 학명 사전 'Plant Name Simplified'가 어떻게 하여 나의 최애 소장품 중 하나가 되었는지...it explains everything!!
3월 블러그에 '밤하늘을 수놓는 별, 고라니가 뛰어다니는 밤' 등 혼자 감상에 젖어 4월의 수목원을 기다렸지만 밤하늘의 별, 고라니 따윈 만난 적이 없고, 오히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피해 생울타리 위에 또아리를 틀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뱀을 만나면서 4월은 화들짝 급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울 5월을 기다리는 마음은 변함이 없고 다시 오지 않을 수목원에서의 순간순간을 더 살아내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