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투르드 지킬이 좋아했던 띠무리의 가장 큰 장점은 블록식재에서 오는 단조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띠무리의 '띠'에서 연상되듯 Long/Thin/(실개천처럼 구불구불한) Winding/(뱀처럼 구불구불한) Snaking이 핵심이다. 이러한 띠를 길이와 굵기를 다르게 하거나 일부를 겹치게 하기도 하고 어느 지점에서는 꼬리의 방향을 틀거나 하면 다양한 식물을 서로 가까이 식재할 수 있다.
Drift라는 단어를 보고 반고흐 (1853-1890: 거트루드 지킬보다 10년 뒤에 태어났다. 동시대에 지구상에 존재했다는 것)의 'Starry Night'이 생각났고 그의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띠무리를 이루며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출처: 반고흐 갤러리 웹사이트)
거트루드 지킬의 띠무리 디자인으로 20세기 초반 영국 정원 건축가(garden architects)들이 선호했던 장방형 보더 (Border, 주로 뒤에 벽이 있고 앞에 잔디나 길이 있는, 정면에서 볼 때 가로로 와이드한 화단)의 모습이다. 보더는 정면에서 볼 때와 측면에서 볼 때 보이는 식물들이 다르다. 걸으면서 변화(sense of development)를 느낄 수 있고 많은 여러해살이풀들의 '제멋대로 퍼지고 서로 엉키고 엮이는 습성'이 아주 자연스럽게 드리프트와 어우러지게 된다. (출처: 거트루드 지킬 웹사이트)
큰 띠무리의 발전된 양상으로 5-6 품종을 간단한 조합으로 믹스해서 식재를 할 수 있는데, 이는 2001년 rhs(영국왕립원예협회) 위슬리 가든의 화단 두 곳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두 화단 사이에 넓은 잔디통로가 있고 이를 거닐 때 식재의 긴 쪽이 보이도록 심었다. 띠무리 크기가 동일하고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지만, 잎들이 직선의 경계를 허물며 여러 종들이 섞인 혼합체로 인해 그 엄격함 또한 누그러진다.
앞 블러그에서도 언급했듯이 드리프트는 전통적인 블록식재를 벗어나고 싶은데 복잡한 혼합식재를 도입하기에 경험이 없어 부담스러운 정원사와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식물이 서로 뒤섞이는 듯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혼합식재보다 관리측면에서도 장점이 있으며, 너저문한 식물을 정리하거나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각 띠무리 사이로 접근하기도 쉽다. 이것은 즉 추가로 식물을 심어야 할 경우 접근의 용이함이 한 몫을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덜 복잡하니 예측도 어렵지 않고 식물지식이 많이 없더라도 잡초를 제거하고 식재를 관리하는 것이 더 쉬워진다는 것이다.
거트루드 지킬의 띠무리로 디자인된 영국 Great Dixter의 Long Border. '화단으로의 접근이 쉽다'는 점이 드리프트의 장점임을 2019년 당시에는 몰랐으나 이번에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진은 필자가 Long Border 뒷쪽에 있는 좁은 길을 통해 화단으로 들어가 널빤지를 깔고 식재하는 모습
(왼쪽) 런던 포터스 필즈 파크의 도면 일부로 들쑥날쑥한 형태의 띠무리를 활용하는 방식은 단순한 혼합식재 조합을 만들 때 효과적이다. (오른쪽) 도면이 현실화된 모습, 새풀과 여러해살이풀로 조합된 띠무리들이 단정하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보여준다.
새풀 Moliana caerulea(몰리니아 세룰레아) 두가지 품종(칼라가 입혀진 부분)이 바탕식물(matrix) 역할을 하고 그 사이사이에 여러해살이풀과 떨기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새풀이 지배적이긴하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양식화해서 표현한 초지의 모습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몰리니아 두 품종을 믹스하지 않고 단일종 블록으로 심었다는 것이다. 두 품종이 너무 비슷해서 서로 분리된 띠무리 형태로 심었을 때만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띠무리는 식물을 서로 블렌딩하고 엮이게 하는 효과를 자아내며 자연 초원지대에 자라는 새풀의 미묘한 패턴을 상기시켜 준다. 아래 이미지는 도면이 현실화된 9월의 모습.
참고: Planting: A New Perspective by Piet Oudolf & Noel Kingsbury, 식재디자인 새로운 정원을 꿈꾸며 (옮긴이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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