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Ep.13 어르신들의 매직핸드, 🔍🔍🔍 로 보면 더 이쁘다.
- 10월 5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일 전
9월 29일 월요일
9시 26분
24.9도
습도 59%

정원사의 필수 아이템, 온습도계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이곳 치유정원을 가을 식물로 단장합니다. 이번 정원치유 프로젝트는 어르신들이 일방적으로 돌봄을 받는 대상자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정원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창작자 (코-크리에이터)로 참여하고 계시죠. 총 5개의 화단을 2명씩 짝을 지어 하나씩 관리하기로 하였으나 그 경계는 어느 순간 무너지고 서로가 서로의 화단을 케어 합니다. 지난 5~6월, 봄~여름 식물을 심었고 이제 그 사이사이 공간에 가을 식물을 심는 과정입니다. 가을 식물로 보식이 완료되면 화단은 어느 정도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 라이프사이클을 지닌 정원의 모습을 갖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준비한 가을 식물은 미국 쑥부쟁이와 버들잎 해바라기 '골든 피라미드' 입니다. 제 2의 봄인 정원의 가을 정취와 풍경을 만들어내는 데 멋진 소재죠. 늦여름에서 늦가을까지 피고 지는 미국 쑥부쟁이는 좀작살나무 열매와 유사한 보라색 꽃을 지니고 있고, 일명 애기 해바라기라고 불리는 버들잎 해바라기 '골든 피라미드'는 황금빛 노란색 꽃입니다. 어르신들이 여름에 얼굴이 큰 해바라기를 심고 하셨는데 비록 베이비 사이즈이긴 하지만 맘에 들길 바랍니다.

미국 쑥부쟁이와 버들잎 해바라기 '골든 피라미드' (오른쪽)
미자 어르신은 테이블 웨에 놓인 이들 식물에 눈길을 주더니 유심히 쳐다보고 이내 사진을 찍습니다. 식물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나고 새로운 식물을 보면 왕성한 호기심으로 조용히 다가가서 만져보거나 눈여겨 보는 모습을 수차례 목격한 터라 이번 일도 그리 새롭진 않습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식물 곁으로 다가가는 그녀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입니다. 쑥부쟁이와 해바라기는 한국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기 때문에 소박한 이미지로 옛 가을 풍경을 떠올리게 해 줄 수 있죠. 이 꽃들이 어르신한테 어떤 회상 자극이 되었을까요?
몰래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식물 사진을 찍는 미자 어르신
아니나 다를까 미자 어르신의 정원사 다이어리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오늘 골든 피라미드도 심고 즐거웠습니다. 노란색은 밝은색, 화단이 한층 밝아졌습니다. 보라색이 참 좋았습니다.

미자 어르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버들잎 해바라기 '골든 피라미드'의 밝고 따듯한 황금빛 노란색은 어둡고 활력없던 정원을 보름달처럼 환하게 밝혀주는 역할을 합니다. 옆에 보라색 미국 쑥부쟁이를 이웃하여 심으면 서로의 색감을 더 돋보이게, 선명하게 하는 보색 대비의 효과로 시각적 인지에 더 도움을 되지 않을까 합니다.
노랑과 보라의 보색대비
식물을 심기 전 우리의 루틴이 하나 있죠. 지난 주 식재한 좀작살나무와 층층이꽃의 식물 이름표를 걸어주는 작업인데요, 기억 저장고에서 식물의 형상과 식재 위치를 꺼내 화단을 찾아가 식물을 알아차리고 이름표를 달아주는 미션입니다. 제법 다양한 식물들이 식재되어 있어 만만치 않습니다. 인지장애 즉 치매는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점차 도미노가 쓰러지듯 사라집니다. 즉 어릴 때의 기억이 가장 오래동안 마지막까지 남아 있죠. 그래서 어르신들의 잔존 기억을 최대한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익숙한 풍경으로 환경을 조성합니다. 낯설지 않으니 마음이 편해 지는 것이죠. 또한 옛 노래를 듣고 옛 과자를 먹으면서 남아있는 옛 기억들을 소환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의 기억은 최근의 기억이자 다소 새로운 정보입니다. 좀작살나무 이름을 어르신들과 세네번 반복해서 외쳐도 이름이 길거나 낯설면 입속에서 맴돌기 마련입니다. 자생종이든 외래종이든 이름이 길고 영어 이름이 있으면 더 난관이구요. 다행이도 꽃이 층층이 핀다고 층층이꽃, 보조 선생님 이름 모모는 그 단순명료함으로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미자 어르신의 좀작살나무 이름표 달기 미션 완성
매 회기 프로그램은 순수한 가드닝 활동과 정원에 심은 식물소재를 활용한 정원 유희 활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식물 잉크 세밀화를 그리거나 화관을 만드는 활동은 정원 유희활동에 해당됩니다. 오늘 어르신들의 한쪽 손에는 🔍🔍🔍가 들려 있죠. 열매와 꽃이 크고 명도와 채도가 밝고 맑으면 어르신들이 이들을 식별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치매는 심각한 시력저하를 동반하기 때문에 치매 친화 정원을 조성하거나 식물 소재를 고를 때 이용자 즉 어르신 중심의 디자인 사고를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는 꽃이나 열매가 크지 않거나, 커도 식물을 세밀하게 관찰하기에 아주 유용한 도구죠. 층층이꽃의 깨알만한 꽃망울을 팝콘 튀기듯 뻥 튀겨 확대해 보거나 좀작살나무의 앙증맞은 보라빛 열매를 포도만큼 키워도 보고 톱풀의 시든 갈색 꽃이 검은색으로 씨앗을 맺어가는 순간을 포착해 주는 매직핸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찰하면서 스케치북에 조심스레 담아내고 그 과정을 통해 식물과 더 친밀해 집니다.
🔍🔍🔍로 식물을 더 알아가기
수십개의 화초를 집에서 키운다는 화자 어르신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순식간에 몇개의 쑥부쟁이를 심어 나갑니다. 화단의 잡초나 묵은 가지를 정리할 때도 고수의 손놀림이 느껴지는데요, 물주기로 깔끔하게 마무리 합니다.
화자어르신의 미국쑥부쟁이로 가을화단 만들기
이제 다음 주면 추석입니다. 긴 추석 연휴로 2주 후에 어르신들을 뵙게 될텐데요, 아쉬운 마음, 고마운 마음 그리고 추석을 기념하는 마음을 담아 오늘은 송편을 나눠 먹었습니다. 식물도 심고 물도 주고 땀을 많이 흘리셨는데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진작가, 영상팀에게 송편을 입에 먹여주신 따듯한 마음도 잊지 않겠습니다.
추석엔 오색송편으로 정 나누기

정원사 일기장을 유심히 보고 있는 미자 어르신
그럼 오늘도 어르신들의 일기장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춘희 어르신: 보라 칙친이꽃(=층층이꽃) 🔍🔍🔍로 보니 더 이쁘다. 너무 좋았다.

혜숙 어르신: 꽃심기, 꽃에 물주기. 🔍🔍🔍로 식물을 보니 더 아름다고 예뻐 보였다.

정순 어르신: 같이 꽃 심고 모모 선생님과 같이 활동해서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다함께 해서 즐거웠습니다. 🔍🔍🔍로 식물을 관찰해서 더 이쁘고 신기했습니다.

옥선 어르신: 좀작살나무, 층층이꽃을 🔍🔍🔍로 보니 더 이쁘다.


나를 있게 하는 우리의 정원치유 활동

보라색 포도, 좀작삭나무 열매
구독자 여러분, 어르신들 해피 추석!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감각의 식물]
미국쑥부쟁이: 가늘고 작은 보라색 꽃이 늦가을까지 오래 지속되며 척박한 토양과 건조한 환경에도 강한 생명력을 지닙니다. 키 50~150cm로 곧게 자라며 무리지어 군락을 형성합니다. 작은 꽃들이 무리지어 핀 모습이 시각적 안정감과 리듬감을 주며 가볍게 흔들리는 줄기와 바람에 흩날리는 꽃은 촉각·청각적 경험도 제공합니다.
버들잎 해바라기 '골든 피라미드': 버들잎이라는 이름처럼 잎이 좁고 긴 버드나무잎 모양 입니다. 늦여름~가을에 황금빛 노란색 작은 해바라기꽃을 무리지어 피우고 키가 150~200cm 정도로 큽니다. 비교적 건조에 강하고 가을 정원에서 수직적 포인트를 주거나 절화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선형 잎의 독특한 질감과 황금빛 가을꽃이 시각적 자극을 주고 키 큰 구조적 식물로 공간 구획 및 정원에서 길 안내(wayfinding) 역할로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함께 합니다]
랩걸: 이혜숙 & 모모 (이이장), 송진희 (부산기장군치매안심센터)
코-크리에이터: 초기 인지증 어르신 6명 (이춘희, 송옥선, 정정순, 김미자, 김화자, 박혜숙)
리빙랩실: 기장군 치매안심센터 치유정원
[우리의 파트너]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우리의 파트너: 부산기장군치매안심센터, 한국에자이, 디랩 (디멘시아 랩, 한국리빙랩네트워크), 나우(나를 있게 하는 우리)
[우리의 가설]
감각의 정원을 생활권 내에 조성하여 정원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치매인들이 안전하게 웰빙을 즐기며 가족,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치유적 환경이자 돌봄 관계망 구축의 공간적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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