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 화관을 쓴 미스 코리아와 미스터 코리아
- 9월 21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일 전
제법 시원해진 아침 공기와 싱그러운 햇살 덕분에 오늘은 정원을 온전히 즐기면서 가드닝 활동을 해도 좋겠다 싶어 오랜만에 파라솔을 펼쳤습니다. 테이블 위에 온습도계를 셋팅하고 화관의 재료가 될 가을 국화도 가지런히 놓고 칠판에 오늘 식재할 식물의 이름도 적으면서 바삐 움직이는 사이 아니나 다를까 등이 왜 이렇게 뜨겁죠? 정원의 동쪽에 자리한 119 기장 소방서 건물 위로 어느 덧 올라온 아침 햇살이 아직은 따갑습니다. 이번 주 가을을 맞이하는 비가 한차례 내린 후에야 햇살이 좀 부드러워질까요?

어서와요, 소중한 당신!
그래도 일단 가드닝 앞치마를 매고 정원으로 나갑니다. 허그부자이자 흥부자인 종세 어르신, 무엇이 그리 즐거우신걸까요?

영택 어르신이 종세 어르신의 앞치마를 매어줍니다.
지난 주 어르신들과 식물 잉크 세밀화를 만들었죠. 정원에서 컷팅한 식물에 롤러로 잉크를 꼼꼼히 바른 후 종이에 눌러 그 모양새를 따내는 작업입니다. 오늘은 완성된 세밀화를 보고 정원에서 그 식물을 찾아내는 게임을 한번 해 보겠습니다. 어르신들이 시각적으로 식물과 세밀화를 매칭시켜 식재 위치를 잘 찾아낼 수 있을지 궁금한데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한번 맞춰 보시죠!
어떤 식물의 세밀화 일까요? 은백색의 잎은 부드러운 질감을 지니고 있고 가까이서 냄새를 맡아보면 쑥향이 나는 식물 입니다.

어떤 식물의 세밀화 일까요?

은쑥과 세밀화
어떤 식물의 세밀화 일까요? 이 식물은 강렬한 주황색 색감의 꽃이 작은 코스모스나 둥근 해바라기를 닮았습니다.
어떤 식물의 세밀화 일까요?
약속이라도 한 듯 다들 헬레니움을 가르키네요.
어떤 식물의 세밀화 일까요? 라벤더를 닮은 보라빛 꽃과 은빛이 도는 흰색 줄기와 황록색 잎은 신비로운 느낌을 주며 잎과 줄기를 만지면 세이지와 라벤더를 섞은 듯한 강한 허브향이 납니다.
어떤 식물의 세밀화 일까요?

러시안 세이지
오늘은 이렇게 3개의 퀴즈를 풀어봤는데요, 식물 잉크 세밀화의 잎과 꽃, 줄기의 형상만으로 식물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아 잠시 고민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다들 멋지게 매치 메이커의 역할을 수행해 주셨습니다. 색이 빠지고 향이 나지 않는 세밀화는 영원히 간직할 수 있죠. 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체인 식물의 삶 또한 유한하기 때문에 지금 이순간 그들의 향과 색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색과 향하면 층꽃나무를 뺴놓을 수가 없죠! 지난 주 화단 정리 후 가을 보식을 위해 구입한 식물 중 오늘은 층꽃나무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자생식물로 꽃이 줄기와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층을 이루며 피어나는 모습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기억하기가 쉽습니다. 보라와 흰꽃을 구입했는데요, 식물 전체에서 은은하고 달콤한 향이 나고 잎은 벨벳같은 질감입니다.
층꽃나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층층이 꽃이 핍니다.
냄새를 맡아 보세요 라고 했더니 화자 어르신이 솜사탕 처럼 달콤한 향이 나요 라고 하십니다.
은은하며 달콤한 향을 지닌 층꽃나무
잎을 만져 보세요 라고 했더니 종세 어르신이 '너무 부드러워서 우단 같아요' 라고 하시는데요, 상반기 정원치유 프로그램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심은 벨벳 질감의 은회색 잎을 지닌 우단동자를 떠올리기를 바랬지만 저의 욕심이었을까요?
우단 질감의 층꽃나무
오늘 예정이었던 층꽃나무 식재는 다음 시간으로 미뤄야 할 거 같습니다. 벌써 2주가 미뤄져 마음이 급하지만 오늘은 치매 극복의 날 (9월 21일)을 맞이하여 어르신들의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가을 국화로 멋진 화관 (꽃으로 만든 왕관)을 만들어 자기 자신에게 씌여 주는 정원 유희 활동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다소 멋적어 하시는 화관 모델 미자 어르신

화관 소재, 가을 국화
엄지 손가락 길이로 자르고 하부 잎 정리
동그란 화관틀에 붙일 소재, 가을 국화 한웅큼
이제 자연스럽게 꽃의 향을 맡습니다. 어르신들 어떤 향이 나나요?
종세 어르신의 국화 꽃반지, 어떻게 이런 멋진 생각을 하셨을까요?

미자 어르신의 따스한 화관 소재 나눔
본격적으로 꽃테이프를 이용해 화관틀에 국화 붙이기
화관을 쓴 미스 코리아와 미스터 코리아
꽃 테이프로 국화를 붙이면서 주거니 받거니 어르신들의 웃음이 끊기지 않는 날이였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화관 만들기를 좋아하셨는데 아마도 완성된 화관을 쓴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을 테고, 하나뿐이 없는 손바닥만한 거울을 돌려 보면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지만 새로웠을테고,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의 화관 쓴 모습을 보면서 키득키득 이쁘다 라고 했던 거 같습니다.
춘희 어르신은 화관이 미스 코리아 왕관 같다고 남편한테 자랑하면 생전 남편이 이뻐 안해 주는데 오늘은 이쁨받겠네 하시네요. 이 얘기를 듣자 옥선 어르신은 남편이 없는데 자꾸 남편 얘기한다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덧붙여 옥선 어르신은 아이들이 어릴 때 화관을 만들어 온 거는 봤는데 내가 해보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정성에 정성을 기울이셨습니다. 목사님이셨던 종세 어르신은 예수님의 멸류관이 생각난다며 할레루야를 왜치기도 하셨는데요, 화관을 중심으로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삶의 소재를 끄집어 내고 이야기할 수 있다니 참 신기하고 감사한 순간이었던 같습니다.

오늘은 유독 어르신들이 '사진 좀 잘 찍어주소'라는 말을 많이 하는 날이었습니다. 이런 기쁜 날, 단체 사진 또한 빠질 순 없죠!







마지막으로, 치매 극복의 날 (9월 21일)을 기념하여 어르신들의 식물 잉크 세밀화 작품과 정원 치유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어르신들의 정성이 깃든 작품을 보고 몇몇 방문객들은
"이런 식물 작품을 보면 마음이 안정될 거 같은데 판매는 안하시나요?"
"어르신들 솜씨가 좋으시네요. 오늘 여기 온 보람이 있어요!"
라고 하셔서 피로가 가시는 듯 했는데요. 어르신들, 모모쌤 모두 수고많았습니다.
어르신들의 잉크 세밀화 작품 전시와 정원치유 프로그램 홍보

이 날 영택 어르신이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저도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있게 하는 우리, 치매여도 안심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코-크리에이터로 정원 치유 프로그램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전합니다. 그럼 다음 주에 만나요.
건강합시다!
[함께 합니다]
랩걸: 이혜숙 & 모모 (이이장), 송진희 (부산기장군치매안심센터)
코-크리에이터: 초기 인지증 어르신 6명 (이춘희, 송옥선, 김영택, 정정순, 김미자, 김화자)
리빙랩실: 기장군 치매안심센터 치유정원
[우리의 파트너]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우리의 파트너: 부산기장군치매안심센터, 한국에자이, 디랩 (디멘시아 랩, 한국리빙랩네트워크), 나우(나를 있게 하는 우리)
[우리의 가설]
감각의 정원을 생활권 내에 조성하여 정원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치매인들이 안전하게 웰빙을 즐기며 가족,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치유적 환경이자 돌봄 관계망 구축의 공간적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