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화자 어르신 '가장 즐거운 날', 춘희 어르신 '자랑스럽다'
- 9월 13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9월 24일
멋진 베레모를 쓰고 오신 영택 어르신의 반가운 손인사로 10번째 정원치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먼저 지난 주 어르신들이 만든 식물 잉크 세밀화를 투명 아크릴에 넣어 보았습니다. 보라색 잉크에 묻어난 에키나시아의 촘촘한 잎맥은 노란 배경과 보색 대비를 이루며 산뜻한 시각적 기쁨을 선사하고 오이풀은 아주 근사한 수묵화가 되었죠.

에키나시아 잎과 오이풀
치매 극복의 날 (9월 21일)을 기념하여 다음 주에는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는데요, 저희도 유관기관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 어르신들의 작품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화단의 시든 잎과 꽃을 정리한 후 작품을 몇 개 더 만들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을 보식을 위해 구입한 몇몇 식물을 식재해 보려 합니다. 식물 시장에는 아직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아 가을 정원을 빛내 줄 식물이 많지 않더군요. 그래도 층층이꽃, 꿩의비름, 향등골풀, 코스모스 '뱅갈 타이거'가 있어 다행입니다. 이제 겨우 꽃망울이 맺힌 상태라 만개하기까지의 과정을 어르신들과 지켜보면서 개화의 기쁨을 함께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10월이 되면 내년 봄에 필 수선화, 설강화 같은 추식 구근도 심어볼 텐데요, 우리의 가을정원은 또 어떤 색감과 질감으로 빛날지 여러분도 기대해 주세요!
층층이꽃 (왼쪽), 꿩의비름과 향등골풀 (오른쪽)
코스모스 '뱅갈 타이거'
지난 시간, 가을하면 떠오르는 식물은? 이라는 질문에 어르신들이 코스모스와 단풍을 말씀하셨죠. 우리에게 익숙한 분홍 코스모스의 생김새는 아니지만 노란색 잎에 빨간 무늬가 매력적인 코스모스 '뱅갈 타이거' 입니다. 무늬가 마치 뱅갈 호랑이 무늬와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네요.
이제 본격적으로 정원으로 나가 땀을 흘릴 시간입니다.
어르신들이 가드닝 활동을 하기 편하게 디자인된 높임형 화단은 건물의 캐노피 아래 위치해 그늘진 공간이죠. 이 곳 그늘 정원에 산수국, 노루오줌, 우단동자를 심었는데 실은 캐노피로 인해 자연관수가 거의 닿지 않아 여름동안 주기적으로 인공관수를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물이 갈변하며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늘정원 화단정리
러시안 세이지, 밥티시아, 니포피아, 가우라, 에키네시아, 헬레니움 등 건조에 강한 식물이 자리한 태양정원은 여전히 활력이 있어 보입니다. 다만 방학 동안 이 곳 치유정원을 방문하면서 여우꼬리 보리사초의 씨송이가 마치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을 타고 데크 틈 사이사이에 박히는 것을 보고 감짝 놀란 적이 있는데요, 정원에 수채화 같은 느낌을 연출하고 이삭의 질감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정원 소재이긴 하나 추후 관리의 문제로 고민끝에 제거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태양정원 여우꼬리 보리사초 제거_7월 (왼쪽, 중앙), 9월 (오른쪽)
가늘지만 유연하고 단단해서 옥상정원의 바람에 굴복하지 않는 골든볼과 알리움 드럼스틱의 묵대도 제거합니다. 식재할 때 식물 줄기가 꺾여 있어 춘희 어르신이 '내 허리처럼 구부정하네'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나는데요, 마치 고무밴드처럼 탄력성을 자랑하며 여름 태풍도 굳건히 견뎌냈습니다. 노란 사탕 같은 골든 볼은 비록 색은 바랬지만 제거하지 않고 남겨두면 정원이라는 커다란 캔버스에 검은 점을 찍는 회화적 효과를 연출할 수도 있죠.
노란 골든 볼과 알리움 드럼스틱 묵대 제거_7월 (왼쪽, 중앙) & 9월
오히려 헬레니움이 쓰러졌는데요, 줄기는 단단하지만 얉은 토심의 문제와 더불어 꽃자루가 없는 꽃들이 줄기 끝에 올망졸망 모여 달리는 꽃차례의 특성상 무게중심이 위로 쏠리는 것이 그 이유이지 않을까 합니다.

무게 중심을 잃고 쓰러진 헬레니움
긴산 꼬리풀의 마른 잎 정리_7월 (왼쪽) & 9월
총 6개의 화단 중 5개는 어르신 2명씩 짝을 지어 조성, 관리하고 나머지 하나는 테스트 베드인데요, 그린과 브라운 톤의 식물이 식재되어 있습니다. 작년 파종하여 길러 낸 그라스 (Grass)가 낮은 존재감으로 다른 식물의 화려한 색감을 받아주기에 적당한 소재였는데 생기가 없어 보인다는 어르신들의 의견을 반영해 바로 이 그라스의 일부를 덜어내기로 하였습니다.

생기없어 보이는 그라스 정리
영택 어르신은 노련하십니다. 가우라 하부에 식재된 식물을 손질하기 위해 분수같이 퍼져 있는 가우라의 줄기를 니포피아의 가늘고 긴 줄기로 머리 묶듯 묶습니다. 이처럼 키가 크고 볼륨감이 있는 식물을 단정하게 정리해서 가드닝을 위한 시야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죠!
가우라 줄기를 묶어 가드닝 활동 공간과 시야 확보
니포피아의 갈변한 잎 제거
강렬한 햇살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여린 잎 사이에서 끊임없이 노란 꽃을 피워내는 솔잎금계국 '문빔'은 정원식물의 새로운 발견입니다. 라벤더 플랜터 한 코너에 무심히 심어놓고 다들 감빡 잊고 있었는데 한 여름의 뜨거운 햇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로즈마리의 든든한 동반 식물이 되어 주고 있네요.
솔잎 금계국 '문빔'의 시든 꽃 (왼쪽)과 얕은 토심으로 쓰러진 회향 제거 (오른쪽)
톱풀의 시든 꽃대는 일부러 자르지 않았습니다. 씨송이가 더 익으면 채종을 할 참입니다.
어르신들, 가드닝으로 땀을 많이 흘리셨는데요. 모두들 수고많으셨고 덕분에 화단이 깔끔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이 곳에 층층이꽃, 꿩의비름, 향등골풀, 코스모스 '뱅갈 타이거'를 어떻게 배치해서 심을지 다음 주에 같이 머리를 맞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실내에서 잠시 땀을 식힌 후, 식물 잉크 세밀화 만들기를 시작합니다. 지난 시간에 사용한 파스텔 톤 색지에서 오늘은 보다 선명하고 밝은 컬러의 색지를 준비했습니다.
고채도+중명도의 색지, 롤러 (오른쪽)
잉크 세밀화에 사용될 식물 소재를 정원에서 꺾어 미니 꽃다발을 만들어 보면서 서로 자신의 꽃다발이 더 이쁘다고 자랑을 하시는데요, 춘희 어르신의 강한 색감의 미니 꽃다발과 야생화 들판의 풀꽃 같은 다정한 느낌의 미자 어르신 꽃다발, 모두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춘희 어르신의 강한 색감의 미니 꽃다발 vs 야생화 들판의 풀꽃 같은 미자 어르신 꽃다발
지난 시간에 해 봤으니 이제 척척 입니다.
파라솔 버베나 + 밥티시아 잎
오늘 춘희 어르신과 화자 어르신은 신이 났습니다. 잉크 세밀화가 맘에 쏙 드셨는지 '니 어느 대학 나왔노? 참 이쁘게 잘 했네' 하시면서 주거니 받거니 웃음꽃을 피웠죠.

니 어느 대학 나왔노? 참 이쁘게 잘 했네
특히 화자 어르신은 보라색 러시안 세이지 작품이 맘에 드셨는지 '잃어 버리면 안되지' 하면서 얼른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러시안 세이지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화자 어르신
호기심 많은 미자 어르신, 뭔가 맘에 안드는 표정이신데요?
춘희 어르신의 헬레니움, 자랑스럽다!
자, 이제 어르신들의 작품 컬렉션을 감상해 보시죠!





오늘 가드닝에 이어 작품 만들기까지 여느 때보다 시간이 정말 빨리 흘러 갔습니다. 매 회기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고민을 하지만 오늘 다시 한번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 무엇을 하든 여기 모인 어르신들이 서로서로 주거니 받거니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웃고 떠들고 하는 것이 정말 큰 활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자신이 만든 작품이 맘에 들면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나눠주기도 합니다. 오늘 춘희 어르신처럼요!

춘희 어르신의 기쁨에 겨운 사탕 나눔
이제 정원사의 일기장을 적는 시간입니다.
가장 즐거운 날이지만 더워서 힘들었다. 그러나 즐겁게 지내서 즐거웠다_화자 어르신
풀메고 더워서 힘들고 재미 있었다_미자 어르신
밭에 풀 뽑고 땀 흘렸다. 항상 기쁘다. 친구 만나서 기쁘다. 식물 칠하는 거 재미있다. 감사합니다_옥선 어르신
재미나게 일을 했다. 꽃을 문대는 것이 재미 좋았다. 자랑스럽다!_춘희 어르신
힘은 들었지만 재미있었다. 꽃을 자르는데 맘이 아프다. 식물 그림 문대는 거 저번 주보다 힘들었다_정순 어르신

그럼, 월요일에 또 뵙겠습니다!
[함께 합니다]
랩걸: 이혜숙 & 모모 (이이장), 송진희 (부산기장군치매안심센터)
코-크리에이터: 초기 인지증 어르신 6명 (이춘희, 송옥선, 김영택, 정정순, 김미자, 김화자)
리빙랩실: 기장군 치매안심센터 치유정원
[우리의 파트너]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우리의 파트너: 부산기장군치매안심센터, 한국에자이, 디랩 (디멘시아 랩, 한국리빙랩네트워크), 나우(나를 있게 하는 우리)
[우리의 가설]
감각의 정원을 생활권 내에 조성하여 정원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치매인들이 안전하게 웰빙을 즐기며 가족,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치유적 환경이자 돌봄 관계망 구축의 공간적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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