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 Final) Ep.16 열여섯번째 만남 그리고 새로운 시작
-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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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7시간 전
지난 5월, 따스한 봄에 시작했던 어르신들과의 정원치유 프로그램이 여름을 지나 어느덧 오늘 마지막 만남을 맞이합니다. 가을이지만, 오늘은 봄날처럼 포근하고 따스하네요. 늘 그랬듯이 마음을 담아 인사드립니다.
“어서 오세요, 소중한 당신!”

인덕 어르신께서 30분이나 일찍 도착하셨습니다. 덕분에 어르신과 함께 정원으로 나가, 미리 적어 오신 ‘정원치유 프로그램 참가 소감’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식물을 심고 흙을 만지니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라는 질문에 어릴 적 친구들과 소꿉놀이하던 추억이 떠오른다며 잠시 미소를 지으셨죠. 평소 핑크빛 옷을 즐겨 입으시는 어르신은 좋아하는 꽃색에도 ‘연분홍’을 적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연분홍 코스모스가 살랑이는 화단가에 살짝 걸터앉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셨습니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인덕 어르신
오늘 마지막 만남을 기념하며 그동안 어르신들과 함께한 정원치유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엮어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5월 첫 만남에서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가기 위해 장기 기억의 서랍을 살짝 열어 옛사진을 매개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었죠. 그렇게 시작된 첫 만남의 서먹서먹함은 6개월의 시간을 지나며 어느새 따뜻한 정으로 바뀌었습니다.
5월 첫 만남, 옛 사진으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우리들의 정원치유 추억사진첩, 2025년 가을
꽃으로 왕관을 만들어 머리에 써보며 수고한 자신을 다독이던 시간, 서울과 대구에서 손님들이 찾아와 정원에서 꽃을 따다 함께 웰컴화병을 만들던 기억, 그리고 땀흘려가며 심은 에키나시아와 해변국화, 코스모스를 돋보기로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정원에 찾아든 나비를 신기해 하는 장면들도 담겨 있습니다.
사진첩을 함께 보며 추억을 되새깁니다.
사진첩을 함께 보면서 아내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손을 잡고 동료애를 느껴보기도 합니다.
지난주 어르신들께 부탁드린 ‘정원치유 프로그램 참가 소감’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혜숙 어르신께서는 정원 활동을 하면서 잡생각이 사라지고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전해 주셨는데요, 그 말씀을 들으니 지난 4월이 떠오릅니다. 부산 정관치매안심센터의 정원을 리모델링하면서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인지에도 도움이 되는 공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장소안도감(いばしょ, 이바쇼)’이었습니다.
이바쇼는 단순한 물리적 장소를 넘어, 자신다움을 표현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뜻합니다. 디멘시아 뉴스에서는 이를 장소 경험에서 느껴지는 느낌, 기분, 감정, 정동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에게는 ‘자기 삶의 연속성을 느낄 수 있는 경험’, ‘세상과 연결되는 디딤돌’, ‘자신의 쓸모를 확인할 수 있는자리’, ‘과거의 내가 존재하는 곳’,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이 정원에서 16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식물을 심고 가꾸고 관찰하면서 어르신들은 마침내 자신만의 ‘장소안도감’을 느끼시게 된 걸까요? 정원 곳곳에 남아 있는 어르신들의 손길과 웃음, 땀, 그리고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그 답을 대신 전해주는 듯합니다.

혜숙어르신의 정원치유 프로그램 참가소감 발표
"잡 생각이 없어지고 불안했던 마음이 편해졌어요."
"여럿이 모여서 하니깐 매우 즐거웠어요. 보람 있었습니다."
"재미있고 친구 만나서 좋았습니다."
"꽃과 나무를 심고 만지고 냄새 맡는 것이 좋았습니다. "
"어릴 때 흙으로 장난치며 놀던 것처럼 재미있었고 소꿉장난한던 생각이 났어요."
"생전 처음 보는 꽃도 좋았고 이번에 몰랐던 것을 알았습니다."
"식물 심고 만질 때 마음이 매우 편하고 즐거웠어요."
"라벤더 향기가 좋아요. 금목서 향이 기억나요."
"나이가 먹고 하면서 생전 해 보지 못한 것을 한다는 것이 즐거웠어요."
"활동사진을 사진으로 보는 것이 좋아요."
"다음에도 하고 싶습니다. 꼭 합시다."
그 외에도 어르신들이 직접 써 주신 소감 중에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는 글이 많았습니다. 서울과 대구에서 손님들이 오셨을 때도 낯설어 하기 보다는 오히려 어르신들이 더 활기찼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다음에도 정원치유 프로그램을 한다면 꼭 참여하고 싶다는 말씀과 함께 오늘 마지막 만남에 아쉬움을 전하시기도 하셨는데요, 매 회기를 준비하느라 애쓴 우리 팀에게도 큰 보람이 느껴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의 추억과 수고가 담긴 정원으로 나가 바람과 햇살 그리고 식물들을 느껴볼까요? 라벤더를 좋아하시는 종세 어르신은 주저 없이 라벤더 잎을 따서 향을 맡으시더니 이내 춘희 어르신에게도 권하시네요. 영택 어르신의 어머님은 층꽃나무 잎을 손으로 살짝 문질러 향을 음미하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향을 통해 정원을 기억합니다.
라벤더와 층꽃나무의 향으로 정원 기억하기

종세 어르신 x 옥선 어르신, 화단 짝지와 함께 사진으로 오늘을 추억합니다.
하얀 해국을 좋아하는 원순 어르신은 해국 옆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꽃시장에 해국을 사러 가셨다네요.
혜숙 어르신은 미니 손꽃다발 만들어 나만의 방식으로 정원을 즐깁니다.
셋이 모이니 풍성한 가을국화꽃다발이 되었습니다.
인덕 어르신과 모모쌤이 아주 정다워 보입니다.

정원에서 다함께 찰칵, 마지막 순간을 기록합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원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식물 심기 전문가가 되신 어르신들에게 내년 봄을 기다리며 직접 꽃을 피워 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핑크 튤립 구근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양파처럼 생긴 이 구근은 가을에 심으면 겨울 동안 뿌리를 내리고, 이듬해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생명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심을 때는 구근 높이의 2~3배 깊이로, 구근 사이 10~15cm 간격을 두어 꽃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도록 합니다. 처음 심을 때만 가볍게 물을 주고 겨울 동안은 별도로 물을 주지 않아도 됩니다. 심기 전까지는 통풍이 잘 되는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하세요.
내년 봄, 어르신들의 돌봄으로 핑크빛 튤립꽃이 건강하게 피어나길 기대합니다.
내년 봄, 핑크 튤립 꽃을 기대하며

어르신들, 반가웠고 고마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르신들과 함께한 정원치유의 추억을 영상으로 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프로그램 참여 소감을 어르신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추억 영상은 11월 중순쯤 완성될 예정인데요, 과연 어떤 따뜻한 순간들이 영상에 담겨 있을지, 그리고 어르신들이 어떤 소감을 전해주셨을지 함께 기대해 주세요.
어르신 영상 인터뷰
매회기 어르신들이 적은 정원사의 추억일기장도 이제 집으로 가져갑니다.
또 만나요!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라벤더와 금목서 향이 언제든 어르신들을 반겨주겠죠.
이 글을 쓰는 지금, 어르신들과의 16번째 만남은 이미 추억이 되어 사진 속에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사진 속의 우리가 지금의 우리를 다시 만나 2025년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의 시간들을 웃으며 따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조심스레 기대해 봅니다.
함께 해 주신 정정순 어르신, 김미자 어르신, 송옥선 어르신, 김화자 어르신, 박혜숙 어르신, 이종세 어르신, 송인덕 어르신, 이춘희 어르신, 김영택 어르신, 최원순 어르신, 행복하고 건강한 하루하루를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16번의 블로그를 따스한 시선을 함께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함께 합니다]
랩걸: 이혜숙 & 모모 (이이장), 송진희 (부산기장군치매안심센터)
코-크리에이터: 정정순, 김미자, 송옥선, 김화자, 박혜숙, 이종세, 송인덕, 이춘희, 김영택, 최원순
리빙랩실: 기장군 정관치매안심센터 치유정원
[우리의 파트너]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우리의 파트너: 부산기장군치매안심센터, 한국에자이, 디랩 (디멘시아 랩, 한국리빙랩네트워크), 나우(나를 있게 하는 우리)
[우리의 가설]
감각의 정원을 생활권 내에 조성하여 정원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치매인들이 안전하게 웰빙을 즐기며 가족,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치유적 환경이자 돌봄 관계망 구축의 공간적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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